모든 걸 다 하는 중국 때문에 전세계가 몸살
친한 선배님이 집을 리모델링했다기에 어떤가 싶어 방문했더니 못 보던 브랜드의 청소기가 거실에 놓여있었습니다.
중국산 제품인데, 시집 간 딸이 집수리 기념으로 사줬다더군요.
속으로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왕 부모님께 선물하려거든 삼성이나 LG 걸 사주지 돈 아낀다고 중국산을 사줬구나 싶어서 말이죠.
잘 아시겠지만 큰 착각이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제품이며, 가격도 깜짝 놀랄 만큼 고가였습니다.
'저가 중국산', '싼 게 비지떡'이란 비아냥을 받는 싸구려 중국산은 정말 옛말이 됐더군요.
한국 기업들도 서둘러 비슷한 제품의 개발에 나섰지만, 중국 제품이 저만치 앞서간 기술력으로 차이를 벌리고 있다고 합니다.
저가 고가 모든 품목에서 가성비 제품 출시, 끼어들 틈이 없어
세계 경제는 오랫동안 WTO 체제 아래서 국제분업을 통해 성장해왔습니다.
선진국은 첨단 고가 제품을 만들고, 개도국이나 후진국은 중저가 제품이나 단순 조립제품 혹은 원료 및 부품을 생산해 서로의 필요를 충족해 왔던 것이죠.
선진국은 부가가치가 높은 생산품을 통해 적절한 성장을 지속해왔고, 개도국들은 그들의 역량에 맞는 제품 생산을 만들어 세계 각국에 수출함으로써 고도성장을 도모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깨지고 있습니다.
미·중 양국의 패권싸움으로 각각의 편에 줄서기를 강요당한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중국이 단순 저가제품부터 첨단 고가제품까지 모든 영역에서 경쟁력을 갖춘 상품을 전세계에 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은 가격 경쟁력에서, 개도국은 품질 경쟁력에서 중국 상품에 밀리면서, 세계 각국의 산업 생태계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산업 구조가 비슷한 한국의 경쟁력은?
여러 기관의 조사는 암울합니다.
무역협회는 반도체 빼면 한국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당했으며, 한국이 중국에 경쟁력을 가진 산업은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최근 내놓았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메모리·기계·자동차·석유화학·조선·철강·디스플레이·섬유·통신기기 등 한국 9대 수출품목의 한중일 점유율을 분석한 자료도 비슷한 결론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지난 2000년에 1위 개수는 일본이 6, 한국이 2, 중국이 1개였는데, 2019년에는 중국이 7, 한국 1, 일본 1로 변했으며, 올해 말에는 중국 8, 한국1, 일본 0개로 전망됐습니다.
<9대 수출품목 1위 수>
한국 | 중국 | 일본 | |
2000 | 2 | 1 | 6 |
2019 | 1 | 7 | 1 |
2024 | 1 | 8 | 0 |
한·중·일 3국의 비교지만, 모두가 경쟁품목들이 겹치는 제조강국이란 점에서 중국의 약진이 그만큼 대단하고 무서울 지경입니다.
더욱이 중국은 전통 제조업뿐만 아니라 자율주행과 AI, 우주항공, 드론과 같은 첨단 산업분야에서도 사실상 세계 선두권을 유지할 정도로 괄목할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쟁력은 속도와 집중...한국과 중국 노동환경 반대로
과거 우리의 경쟁력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속도와 집중이었습니다. 전략산업을 선택해 모든 역량과 자본을 집중하는 한편, 연구과제나 제품생산에서 목표일과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시간과 노동력을 총동원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게 이제는 중국의 강점이 되고 우리의 약점이 됐습니다.
예전 우리 기업들은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야근과 밤샘 근무가 예사였죠. 일본에 밀리는 기술을 빠른 납기와 낮은 가격으로 상쇄했던 겁니다.
연구도 마찬가집니다. 목표일이 정해지면 연구원들이 연구실에서 밤을 새며 집중한 끝에 목표일에 과제를 완수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주52시간 근무제가 경직된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그렇게 유연한 집중 근무가 불가능합니다.
반면 중국은 목표가 정해지면 예전 우리처럼 집중근무와 야근을 하면서 연구개발과 제품출시 기간을 모든 경쟁국의 절반 이하로 앞당기고 있습니다.
중국을 상징하던 '만만디'가 '빨리빨리'로 변한 가운데, 한국사람의 대명사이던 '빨리빨리'가 최소한 산업분야에서는 '만만디'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과잉생산·덤핑수출에도 살아남은 더 강한 중국 기업의 공세 예상
중국 제품이 급속도로 전세계를 잠식하고 있는 상황은 사실 중국정부가 고도성장을 유지하려고 과잉생산을 유도하고 묵인한 탓이 큽니다.
경제성장률을 높이려는 정부의 지원 하에 기업이 과잉생산을 하고, 내수가 받쳐주지 못해 덤핑 수출에 나서니까,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산의 공세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런 저가 출혈 수출은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기업이 버틸 수가 없을 뿐더러, 그런 기업을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정부의 재정부담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가성비를 갖춘 중국제품이 상당 기간 휩쓸면서 전 세계 수많은 기업들과 산업이 무너지고 나면, 세계 시장은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요구할 것인데, 문제는 그 때도 중국의 가공할 위협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덤핑수출을 하면서 중국 기업 역시도 상당수 무너질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군살을 뺀 뒤 다양한 경험과 더 나은 기술을 장착한 채 살아남은 중국 기업들은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벼랑 끝 한국의 선택은?
이런 중국 기업에 맞서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중국에 맞서겠다며 애써 구축한 주52시간 근로제 등 선진화된 노동시스템을 되돌리는 건, 근로자의 편익과 인권에 해를 끼치는 일이기에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근로시간단축 기조는 유지하되, 특정한 시기에 일을 집중할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안은 반드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정책 과제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할 일이 많습니다.
우선 순위 두 가지만 들라면, 첫째 줄줄이 단계를 거치면서 뛰어난 창의성을 퇴색시키고 상황에 대한 신속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관료주의를 벗어나야 합니다.
둘째는 조금만 수틀리면 미련없이 더 좋은 기업과 나라로 이직하며 기술유출 우려를 키우는 근로자들을 붙잡을 인센티브 방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이 바뀌어서 예전처럼 일 하자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더 나아진 노동환경의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거센 중국돌풍을 이겨낼 수 있는 묘책을 서둘러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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