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바람을 쐴 겸 강원도 원주를 다녀왔습니다. 원주 하면 치악산이 떠오르고 치악산 하면 구룡사가 연상되기에 운전대를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마침 날씨가 너무 좋아서인지, 비행기가 구름 위로 지나며 만든 궤적이 마치 구름이 제 몸에서 총알을 쏘아내는 듯한 모양을 그리네요
42번 국도를 달리다 학곡삼거리에서 구룡사로로 접어들자, 짙은 녹음이 우거진 지방도가 쭉 이어졌습니다. 큰 느티나무들이 가로수로 늘어선 길은 그 폭이 운전하기에 좀 좁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멋진 길이었습니다.
늦여름의 가로수들이 터널을 이룬 가운데, 오후에 느슨해진 햇빛이 짙은 녹음을 연두색으로 희석시켜며 연한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길 주변에 들어선 캠핑장들과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자동차 야영장 등을 지나니 매표소가 나오고, 그곳을 통과해 조금 더 운행하니까 우거진 자연 속에 튈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어울리는 고층 타워가 보이더군요.
콘크리트와 목조가 함께 어우러진 형태였습니다.
알고보니 구룡사에서 운영하는 전망대 커피숍으로 이름이 '한을카페'였습니다. 사찰 경내에 웬 뜬금없는 전망대 카페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아 둘러보게 되더군요.
걸어서 오르는 계단도 있었지만, 전망대까지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카페로 향했습니다.
내부는 다른 도시의 전망대 카페처럼 내부에서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좌석이 둥근 유리창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중간중간 바깥으로 나가는 문이 달려 있어서 창밖 베란다에 설치된 의자에도 앉을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가장 경관이 좋은 방향에서는 치악산의 웅장한 산세를 그대로 눈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사찰 카페, 수행과 위락의 편안한 경계점
한을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시켜먹으며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경건한 사찰 경내에 이런 도드라진 위락시설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의외로 편안하고 자연스럽다는 거 말입니다.
막걸리와 파전을 파는 수많은 음식점과 산나물 혹은 목각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난무하는 여느 사찰의 주변 풍경보다는 차라리 이런 게 훨씬 낫다고 여겨졌습니다.
사찰 주변에 늘어선 식당에서 과식하고 술에 취해 건들거리는 모습이 아니라, 뛰어난 풍광 속에서 차 한 잔 마시며 마음을 다스리는 모습이 훨씬 아름답지 않을까요.
경건하게 도를 닦는 요람인 사찰과 그곳에서 위안을 얻으려는 속세인들의 경계점에 서 있는 전망대 카페, 꽤 괜찮은 어울림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수익사업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수많은 종교의 포교나 선교행위가 이제는 예전의 경건과 엄숙 일변도를 벗어나, 친근함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있다는 판단도 들었네요.
사찰 본관에 붙은 주차장이 주는 배려의 느낌
유명 사찰을 가보면, 대부분 먼 거리에 있는 주차장에다 차를 세워두고, 도보로 사찰의 본 건물까지 걷도록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경건해야 할 사찰에, 관광차 온 차들이 뻔질나게 오가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모처럼 공기좋은 야외에 와서 적당히 걷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치악산 구룡사에서는 약간 색다른 느낌이 드네요. 구룡사는 사찰 본건물 바로 아래에 큰 주차장을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어! 여기까지 주차장을 만들었다고? 굉장히 편한데...
맞지 않는 표현일 지 모르지만, 굉장히 배려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경건과 엄숙함을 강요하던 사찰이 의외의 친절을 베풀고 있다는 느낌 말이죠.
요즘 우리는 경쟁이 너무 치열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거기다 AI혁명과 같은 기술발달도 너무 빨라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역시 말할 수 없을 정도고요.
지치고 피폐해진 마음을 달래기에는 경건하고 엄숙한 종교행위보다는 친절한 종교활동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렇게 본다면 유서깊은 사찰 경내에 만들어진 멋진 전망대 카페와 편안한 주차장은 시대가 원하는 조합이 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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