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운전할 때 사람들은 흔히 '이중인격자'가 됩니다. 평소에 착했던 사람도 운전할 땐 무지막지한 무례한으로 변하기도 하지요.
복잡한 도심길에서 운전중 가장 스트레스 받는 상황 중 하나가 바로 끼어들기 아닌가 싶네요. 길은 넓고 사거리와 진출입로가 수시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제 갈길을 가려면 어쩔 수 없이 끼어들기를 해야합니다.
남이 끼어들 때는 절대로 안 비켜주려고 앞 차와의 간격을 줄이다가, 자기가 끼어들 때 남이 안 비켜주면 분노하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죠.
때로 집 근처에서 끼어들기로 실랑이를 벌였는데, 상대차가 같은 아파트로 따라 들어오면 민망해지면서 혹시 알아볼까봐 마음 졸이기도 합니다.
양보가 미덕일까
만약 누군가 끼어들려 할 때 내키지 않아도 잠깐 양보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만, 반대로 그것은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날 올림픽대로에서 반포 진출로로 나가려는데, 일찌감치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차량들이 줄을 잇고 있더군요. 제일 뒤에서 줄을 서려 했지만, 이중삼중으로 차들이 겹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앞쪽으로 가서 끼어들기를 시도했습니다.
다행이 성격이 좋은 분을 만나서인지 경적 공격도 받지 않은 채 무난하게 진출 차선에 들어갔습니다. 감사의 깜빡이를 올리는데 마침 라디오 청취자 사연에서 공교롭게 끼어들기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먼저 여성 청취자가 "진출로에서 끼어들려는 차가 많길래 몇 번 양보해줬는데, 뒤차가 경적을 울리며 난리를 치더라구요. 세상 인심이 왜 이렇게 각박해졌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하소연했습니다.
그 여성은 자신의 선행을 인정받고 뒤차 운전자의 강퍅한 성정을 진행자가 나무라주길 바랬던 것 같은데, 어떤 대답이 나올까 궁금하던 차에 라디오 진행자가 적절한 답변을 하더군요.
"한번쯤 양보는 잘 하신 것 같은데 자꾸 양보하면 저 뒤에서 차례를 지키며 진출 순서를 지키던 운전자들은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운전자님께서는 선행이라고 생각하셔도 어쨌든 그 선행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많이 생긴다면, 양보도 적절히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잦은 양보는 화를 부른다
속으로 '맞아 그래!' 싶더군요. 누구나 길을 착각해서든, 아니면 진짜 급한 일이 있어서든, 때때로 불가피하게 끼어들기를 해야 할 상황이 옵니다.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음을 감안하면, 역지사지로 생각해서 누군가 끼어들려 하면 한번쯤 양보하는 게 맞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양보를 마치 선행을 실행하는 걸로 여기고 지나치게 한다면, 뒤에 있는 사람들 입장에선 화가 치솟을 게 분명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뒤쪽 멀리서 '빠앙!'하고 경적이 길게 신경질적으로 울렸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저 앞쪽에서 SUV 한 대가 간격을 크게 벌려놓고 있는 틈을 타 서너 대의 차량이 끼어들더군요.
그 차가 일부러 양보하는 거였는지, 아니면 휴대폰을 보다가 앞차의 움직임을 놓쳤는지는 모를 일입니다만, 오래 기다리고 있던 뒤차들 입장에선 부아가 치밀만 했습니다.
끼어들기는 양보의 임계점을 시험하는 무대입니다. 끼어들려는 쪽과 끼어주지 않으려는 쪽이 끝까지 밀어붙이면 결국은 접촉사고와 함께 과실비율을 따지는 경제적 시간적 번거로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언제든 입장이 바뀔 수 있는 끼어들기이기에, 눈치있는 끼어들기와 적절한 양보의 접점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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