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교 국가의 제사가 내재한 갈등
우리 사회에서 돌아가신 조상을 기리는 제사는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중요한 의식으로 평가됩니다.
이번 추석에도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이렇게 명절 낮에 행하는 제사를 차례라고 부릅니다.
어느 사회든 제사의 의미는 비슷하지만, 형식과 절차는그 사회가 수용하고 있는 종교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한국은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다종교 국가이기에 종교 구성도 그만큼 다양한데요, 신도들은 그가 믿는 종교의 교리에 따라 제사를 바라보게 되지요.
기독교인들은 전통적 제사 의식을 불편하게 생각
한국의 제사나 차례는 집에서 치르는데 이는 유교의 의례입니다. 조상을 잘 모시면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의미가 담겨있고요.
절에서 드리는 제사로 알고 있는 불교의 재(齋)는 엄밀하게 말하면 제사와는 다른 것으로, 영혼을 깨달음으로 이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만, 불교는 우리 민족의 오랜 종교였기에 한국의 전통 문화 속에서 유교적 제사의식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처음에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기독교처럼 우상숭배로 여기고 금지했지만, 1939년에 교황이 훈령을 통해 제사를 종교의식이 아닌 전통 의식으로 간주하여 허락했습니다.
반면, 기독교에서는 제사의 의미와 행위가 여러가지로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교리와 충돌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이런 판단이 동양적인 전통과 내면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라든지, 조상을 기리는 행위가 우상숭배와는 다르다는 여러 철학적·학술적 해석도 존재하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상이 제사에 찾아온다며 믿고 절하면서, 음식을 바치는 행위가 기독교인들에게는 아무래도 불편하게 와닿는 것이죠.
갈등 유발보다는 절충식...기독교는 기도, 나머지는 절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종교의 문제가 교제의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언급되더군요.
돌싱 특집이었는데 아무래도 이들은 한번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기에, 살면서 종교적 차이가 가족 간의 행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경험해본 듯했습니다.
글쓴이의 친지들도 다양한 종교를 갖고 있고, 그 중에 당연히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종교적 차이에 따른 불편한 감정이 당연히 존재했었고, 추석과 설 차례, 기제사 등이 다가올 때마다 제사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고민하는 가족과 그로인한 긴장이 함께 했습니다.
오랜 생각과 협의 끝에 내린 결론은 각자의 종교를 존중하는 쪽으로 갔습니다. 다만 철저히 어느 한 쪽을 맞추거나, 특정 가족의 종교에 맞춰 교대로 하기보다는, 함께 하되 절충하는 식으로요.
이를테면 제삿상은 전통식으로 차리되, 절은 무교나 천주교 불교신자가 하고, 기독교 신자는 서서 기도를 드리는 형태로 말입니다.
차례 때 몇 번의 절을 하는 동안 기독교 신자인 가족은 그때마다 서서 조용히 가족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했더니 아무도 불만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를 양보하고 배려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신념의 마지노선은 정하되, 그 안에서 타인의 종교를 포용
신앙이 깊을수록 종교적 신념을 지키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다른 종교인과 함께 살아가는 삶입니다.
종교적 신념을 현실에서 지나치게 주장하면 갈등이 불가피해지고, 극단적 신앙은 자신과 타인을 모두 불행하게 만들게 된다는 걸 우리는 많이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본인이 가진 신념의 한계는 지키되, 그 안에서 다른 종교를 가진 타인에게도 숨통을 터주는 것이 다종교 국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요.
이번 추석에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가족들이 미소를 지으면서 함께 차례에 참여하며 조상에 대한 고마움을 기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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