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불편했던 어릴 적 기억
추석과 설 같은 명절을 맞는 마음은 항상 설레면서도 한 편에서는 묘하게 불편한 구석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모처럼 부모형제와 친척을 만난다는 건 기대되는 일이지만, 만남이 항상 행복과 해피엔딩을 보장하지는 않으니까요.
이상한 일이지만 가족이 오랜만에 만나면 의외로 싸움이 자주 발생합니다.
아마도 많은 성인들의 기억 속에는 어릴 적에 어른들이 명절 때 만나면 꼭 큰 소리가 나서 난장판이 되고, 누가 먼저 보따리를 싸서 다시는 안 올 듯 문을 박차고 나가던 광경이 희미하게 있을 겁니다.
요즘도 다르지 않네요.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초중생들이 올린 글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한 내용을 보면, "이번 추석에 할아버지 댁에 안 갈 방법이 없을까요. 할아버지 댁에만 가면 삼촌과 아빠가 싸워요."라고 적어놨네요.
좋은 날의 아픈 기억, 만들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요.
"옛날에 네가 그랬잖아!" <과거 이야기 안 꺼내기>
명절싸움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과거 이야기는 스펙트럼이 워낙 넓죠.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부분이 '차별'에 대한 이야기일 겁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모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 형제 간에 권력투쟁을 한다고 독일 심리학자가 말하더군요.
형제자매 간에 누가 더 사랑을 더 받고 덜 받았는지, 학업이나 결혼 때 경제적 지원에서 차별했는지 등 부모입장에선 잘 기억도 나지 않거나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던 건데도, 형제자매들 간에 혹은 부모 자식 간에 싸움의 주제가 됩니다.
심지어는 특정 손자 손녀를 차별했다는 자식들의 주관적 판단이 서운함을 불러 싸움의 계기가 되기도 하지요. 가족은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만, 차별에 가장 예민한 대상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상처나 갈등이 싸움의 불씨가 될 수 있는 만큼, 과거사 이야기는 명절에는 되도록 꺼내지 않는 게 분쟁을 방지하는 길입니다.
"술 먹은 김에 하는 이야긴데..." <불만의 촉발제인 과음 자제>
가까운 상대에 더 관용적으로 대하는 게 인지상정일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작은 일에도 서운함을 더 크게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서운함들을 이성적 판단과 자제력으로 묻어두고 살지만, 아시다시피 술이 그 자제력의 두껑을 여는 경우가 많죠. 특히 명절 가족 모임에서 그런 일이 많이 발생합니다.
모처럼 어머니가 차려주신 맛있는 음식과 안주들을 앞에 두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다가도, 한 잔 두 잔 알콜이 뇌를 점령하다보면 눌려놨던 불만들이 점차 고개를 쳐들고 막판에는 폭발하고 맙니다.
앞에 초등학생이 호소했던 것처럼 아빠와 삼촌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서로 때릴 듯이 싸우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이죠.
명절 때 가장 조심해야 할 대상이 바로 이 술이 아닌가 합니다. 술 먹고 하고싶은 말 다하고 돌아오면, 후련한 게 아니라 후회가 쌓여 가슴이 숯덩이가 됩니다.
"왜 당신 혼자만 일하는 거야!" <적절한 역할 분담>
명절은 평소에 하지 않던 많은 일들을 가족들에게 요구합니다.
제사 준비라든지, 산소나 친지 방문 때 운전이라든지, 부모님에 대한 용돈 배분이라든지, 여러 사안에서 누군가는 더 하고 누군가는 덜 하게 되는 게 현실입니다.
역할 분담은 반드시 필요한데, 이 때 누군가 과도한 역할을 지게 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본인은 흔쾌히 하더라도 아내나 남편이 "왜 당신만 일하냐!"고 들쑤시면 언뜻 불쾌한 감정이 들게 됩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한 사람에게 너무 과할 정도로 짐이 몰리면, 모르는 사이에 서늘한 공기가 맴돌고 살얼음판이 만들어집니다.
역할을 기꺼이 진다는 이면에는 임계점이 존재합니다. 눈치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눈치로 가족 중에 누구 한 사람에게 짐이 몰려 있다싶으면 짐을 나눠지세요.
"잠깐 나가서 담배 한대 하자" <중재자의 필요성>
어떤 상황에서든 갈등의 당사자가 스스로 갈등을 해소하는 중재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가족 간의 싸움을 관찰해보면, 싸움이 벌어질 때 중재역은 없고 다들 어느 한편에 들어가 그 싸움판을 키우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다른 사회적 갈등 상황에 비해 가족간의 갈등은 매우 주관적이며, 사소한 실수가 과장돼 있으며, 증오보다는 애증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만큼 옳고 그름에 판단을 둔 논리적 중재가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모가 되든 형제자매 중에 누가 되든, 싸우는 이들을 감성적으로 부드럽게 다독이고 분리시켜주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조금만 거리를 떨어뜨려줘도 머리가 식으면서 자제력을 갖게 됩니다.
형수님, 감사합니다.
아주버님, 수고하셨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명절은 즐겁지만 동시에 피곤한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피곤함을 줄이고 즐거움을 늘리는 길은 사랑과 감사의 표현입니다.
먼 길 내려 온 형제자매들에게, 먼저 와서 일손을 돕는 이에게, 금주하며 운전대를 맡은 이에게, 친구와의 해외여행 대신 찾아 준 조카에게, 감사하고 수고했다는 말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싸우지 않고 서로에게 감사하는 가족을, 결실의 기념일인 추석은 참 고마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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