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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음식

140년 만에 산책 가능한 우리 땅, 용산 미군기지 숙소 탐방

by 아이언맨65 2025.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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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 너머로 약소국의 아픈 역사가 서린 곳

 
길을 걸을 때마다 저 너머 삶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하게 여겼던 곳.
 
우리 땅이지만, 금단의 구역이었던 용산 미군기지 장교 숙소를 연말연시에 다녀왔네요.
 
단순히 미군기지로만 치부하기엔, 이곳은 약소국의 아픈 역사가 너무 많이 묻혀 있는 곳입니다. 
 
근대사만 한정하더라도 1882년 임오군란 진압명목으로 청군이 주둔한 이래, 청일 전쟁 또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자리를 잡았고, 1945년 일본의 패망 이후 최근까지는 주한 미군의 주력기지였었죠.

수도 중심부가 140여 년 동안 외국 군의 기지

서울의 핵심지며 가장 활용도가 높은 지역인데도, 정작 우리 국민은 백 년이 넘게 철조망 너머로 감히 쳐다볼 수도 없었던 금역이 바로 이 구역이었습니다.
 

 
안내소를 거쳐 경내로 들어서면, 한국과는 전혀 다른 이국적 건물이 눈앞에 확 펼쳐집니다.
 
전형적인 미국식 건물이 여유롭게 지어져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이런 식의 건물들은 미국 소도시의 일반적 풍경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장교 숙소 저 너머로 용산구의 서빙고 역이 보이네요.
 
저 서빙고 역사 건물에서는 금단의 땅인 이 구역을 엿볼 수 있었을까요.
 

 
빨간 벽돌로 된 벽이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얼핏 눈에 들어온 익숙한 로고 LH.
 
미군기지 숙소에 웬 LH 표기가 돼 있을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미군이나 미국 건설업체가 아닌 한국 공기업인 LH가 이곳을 지었더군요. 
 
이국 땅에서 우방국을 지키는 역할을 하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아이들 키우는 거겠죠.
 
걷다 보니 넉넉한 부지에 잘 조성된 놀이터가 나타났습니다.
 

 
부지 자체가 워낙 넉넉해서 그런지 놀이터 역시 널찍하니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게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한국 땅이지만 사실상 미국령에서 뛰놀던 아이들은 저 멀리 삐죽 솟은 한국의 아파트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관람객들에게 개방된 복층 주택으로 들어가 보니 1층에 주방과 거실, 2층은 3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더군요.
 
4인 이상의 가족이라도 넉넉하게 생활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중에 한 방에는 예전에 근무했던 미군 장교 가족의 입상이 있었고 '내 마음의 고향'이란 제목하에 가족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 태어나 놀이터에서 뛰놀던 아이들에겐 저 멀리 남산과 한국의 아파트가 보이는 이 용산기지가 정말 마음의 고향이 되지 않았을까요.
 
 연말연시라 그런지 경내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주택이 모여있는 곳을 지나 조금 외곽으로 가니까 넓은 운동장 옆에 피크닉 공간이 설치돼 있네요.
 
여기서 가족들이 바비큐 파티도 하고 이웃들과 친목을 도모했었겠죠.
 
피크닉 장소에서는 저 멀리 남산타워가 보이는군요.
 

 
피크닉 공간 근처에 전시공간이 조성돼 있군요.
 
용산공원의 역사에 관한 여러 가지 미디어 제작물을 관람할 수 있었고, 거대한 입체지도가 설치돼 있어서 용산기지 전체를 쉽게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높은 벽과 철조망들은 묘한 기분을 자아냈습니다.
 
한국을 지켜주는 우방국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우리는 왜 수도의 심장부를 백여 년 동안 외국에 내줄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벽을 따라 스멀스멀 기어 나오더군요.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로 온 나라가 갈가리 찢겨 싸움판이 벌어진 지금의 형국을, 오랫동안 원치 않게 외세를 품었던 용산부지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미군 장교숙소를 포함한 용산기지는 단계적으로 서울시에 반환되지만, 미국 대사관 예정부지와  미군전용 드래곤힐 호텔, 헬기장 등은 앞으로도 미국이 계속 사용한다는군요.
 
용산기지가 향후 시민공원을 비롯한 다양한 용도의 시설로 바뀌더라도, 이 땅 위에 어려있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교훈은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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